‘나의 독재자’는 단순한 정치 풍자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군사정권 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가짜 독재자를 연기하는 배우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과 인간, 가족과 체제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영화 속 배경인 1970년대 서울은 단순한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물들의 감정과 메시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본문에서는 영화 속 서울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시대가 영화의 정서와 주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1. 1970년대 서울, 외형의 근대화와 내면의 억압
‘나의 독재자’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는 한국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던 시기다. 서울은 경제 성장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외형상 화려한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억압과 감시, 검열이 일상이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영화는 이 이중적인 시대상을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극 중 연극배우 성근(설경구)은 허름한 극장에서 삶을 이어가며, 정권의 요청으로 ‘가짜 북한 수령’을 연기하게 된다. 이 설정 자체가 1970년대 서울이라는 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 정권은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권력을 유지하는 논리를 설파했고, 실제로 대북 심리전과 국민 사기 진작용 방송이 다수 존재했다. 영화는 이 점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면서도, 그 시대의 현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가짜 연설 장면, 회색빛 건물과 고층 빌딩이 혼재된 도시 풍경, 국정원 요원의 감시 등은 서울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시대의 억압과 광기를 체화한 상징적 공간임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서울은 한편으로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성은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기였다.
2. 서울이라는 무대, 체제 연극의 중심 공간
영화의 주요 무대는 극장, 방송국, 청와대 주변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간들은 모두 ‘연극’과 ‘공연’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연결되며, 서울이라는 도시는 결국 체제가 만든 ‘무대’로서 기능한다. 특히 연극배우 성근이 ‘가짜 수령’을 연기하며 훈련받는 장면은 실제 무대와 권력의 무대를 교차시키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러한 설정은 1970년대 서울이 단지 생활 공간이 아닌 ‘정권이 연출한 거대한 극장’이라는 은유를 가능하게 한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 검열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의 시선, 권위적 인물들의 등장 등은 모두 서울이 ‘현실의 무대’로서 연극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특히 국정원의 요원들이 지하에서 성근을 훈련시키는 장면은 감시의 시대, 통제된 정보, 조작된 리더십이라는 현실을 무겁게 전달한다. 또한, 이 시기의 서울은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구조 속에서, 인간 관계마저도 이념과 체제의 영향을 받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태식(박해일)은 그런 시대에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역할을 통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감정의 변화 역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체제 연극 속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3. 가족과 권력, 그리고 시대의 아이러니
1970년대 서울은 영화 속 가족 서사의 배경이자, 개인과 체제 간 갈등을 드러내는 장소다. 주인공 태식은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라며 체제에 대한 반감과 개인적 고통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러나 그가 처한 현실 역시 체제가 만든 구조 속에 있다. 그는 불법 도박장과 가짜 방송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도 거대한 거짓의 일부가 되어간다. 이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체제의 일상화’를 잘 보여준다. 가짜 뉴스, 연극적 정치, 조작된 감성. 이러한 것들은 1970년대 서울이라는 시대적 무대 위에서 철저히 작동하고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성근이 수령 역할을 마치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장면은, 그 시대의 피해자가 단지 정치인들만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가족조차도 정치 도구로 소비되고 파괴되던 시대. 그 상처는 도시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화는 결국 1970년대 서울이라는 배경을 통해 ‘가장 사적인 관계마저도 가장 정치적인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가족은 해체되고, 진심은 왜곡되며, 침묵은 강요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인간은 저항하고, 사랑하고, 자기 존재를 찾으려 한다. ‘나의 독재자’는 그 모순과 아이러니를 탁월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나의 독재자’는 1970년대 서울이라는 도시를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닌, 권력과 억압, 인간성과 연극성의 총체로 활용한다. 서울은 이 영화에서 실존적 감옥이자, 체제의 연극 무대이며, 가족이 해체되는 공간이다. 중후한 정치풍자와 개인의 드라마가 서울이라는 공간 위에 펼쳐지며, 관객은 단순히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사회와 감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말한다. 그 시절 서울은 단지 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침묵을 연기하던 거대한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