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개봉한 영화 싱글 인 서울은 싱글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그려내며 큰 공감을 얻은 작품이다. 이상엽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이동욱, 임수정의 안정적인 연기가 더해져, 연애와 독립, 그리고 자기애를 따뜻하게 담아냈다. 특히 이 영화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다채로운 촬영지를 활용해 관객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현실감을 동시에 안겼다. 단순한 무대가 아닌, 인물들의 감정과 연결된 장소들 덕분에 이야기의 몰입도가 더욱 깊어졌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주요 촬영지를 중심으로 실제 장소 정보를 소개하고, 해당 공간들이 극 중에서 어떤 감정적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겠다.
홍대 거리 — 혼자와 함께의 경계
영화 초반, 주인공 ‘영호’(이동욱 분)가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홍대 거리다. 서울에서 가장 활기찬 분위기를 지닌 홍대는 싱글 라이프와 청춘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노천 카페, 예술 벽화, 버스킹 무대 등 다양한 도시적 요소들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자유’를 동시에 표현한다.
특히 영호가 카페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많은 싱글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 장면은 단순히 '혼자 있는 남자'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와 굳이 연결되지 않아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립의 감정을 잘 담아낸다.
그러나 같은 장소가 후반부에는 감정적 전환의 배경으로 다시 사용된다. 영호가 이현(임수정 분)과 우연히 다시 마주치거나 혼자 있을 때와 달리 어딘가 허전한 분위기를 풍기며, ‘혼자’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홍대 거리의 특징은 단지 트렌디하고 젊은 감성만이 아니라, 시끌벅적함 속에서도 홀로 있는 이들의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관객은 그 길 위에서 영호처럼 ‘자발적 고독’을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고독이 어느 순간 ‘공허함’이 될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영화 속 홍대는 자유와 고독, 시작과 끝의 상징적인 장소로 활용된다.
북촌 한옥마을 — 감성의 축적 공간
싱글 인 서울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장소 중 하나는 북촌 한옥마을이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주인공들의 감정이 점차 변화하고 무르익는 과정 속에 등장하며 감성적 깊이를 더한다.
영호와 이현이 북촌 골목을 함께 걷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환점 중 하나다. 초반의 냉랭한 관계에서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며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배경 삼아, 고요하고 아늑한 한옥 골목이 등장한다.
북촌은 영화의 분위기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도심 속에서도 느릴 수 있고, 전통과 현재가 섞인 공간에서는 마음도 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한다.
특히 영화에서는 흔히 알려진 북촌 8경 중 일부가 인물 중심 앵글로 담기며, 공간 자체보다 ‘감정’이 먼저 보이도록 연출되었다. 이 장면들은 연인 간의 서툰 감정 전달과 심리적 거리감을 한층 더 섬세하게 표현한다. 북촌의 골목길은 정적이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시선과 숨결은 뜨겁다.
관객에게는 “저런 골목에서 누군가와 걷고 싶다”는 감정을 남기며, 로맨스와 여행의 경계에 놓인 장소로 기억된다. 촬영 이후 이 장면을 찾는 팬들의 발길이 꾸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강공원 — 거리감과 마음의 속도
서울을 배경으로 한 많은 로맨스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가 바로 한강공원이다. 싱글 인 서울에서도 이 공간은 중요한 감정의 매듭 장소로 활용된다. 특히 ‘한강 자전거 도로’는 영호와 이현의 심리적 거리감을 시각화한 대표적 장면의 배경이다.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달리지만 속도와 호흡이 맞지 않는 장면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화는 겉돌고,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장면이 이어질수록 그들은 점차 같은 속도와 리듬을 맞춰가며 진정한 동행의 의미를 찾아간다.
또한 밤의 한강 풍경은 고백과 침묵, 결심의 배경이 된다. 조명이 반짝이는 강변을 배경으로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은 전형적이지만 진부하지 않다. 그것은 두 사람이 공유하는 고독과 진심을 반영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실 속 한강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공 공간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매우 사적인 감정이 투영되는 무대가 된다. 누구나 지나쳤을 장소에서 사랑이 움트고, 또 외로움이 채워지는 경험을 관객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종로 서점 골목 — 내면의 변화가 시작된 곳
싱글 인 서울의 중요한 무대 중 하나는 종로의 오래된 서점 골목이다. 이현이 일하는 출판사와 영호가 원고를 쓰러 다니는 카페, 그리고 둘이 처음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공간이 이 골목 안에 담겨 있다.
서점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영호는 자기계발 중심의 실용적 글을 쓰는 작가지만, 이현은 감정과 내면에 집중하는 기획자다. 그들의 충돌은 단지 일의 방식이 아니라, ‘혼자 사는 방식’에 대한 가치 판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점 골목의 풍경은 그들의 이질감을 더욱 부각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시간이 흐르며 조율되는 감정의 온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장면으로 사용된다.
좁은 골목길, 오래된 간판, 종이 냄새가 나는 서점 내부는 두 인물 모두가 마음을 내려놓는 지점이 된다. 처음에는 각자의 영역을 주장하던 이들이,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는 장소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골목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보여주며, 현대인의 내면과 외로움을 투영한다. 혼자였던 사람들 사이에 처음으로 ‘연결’이 생기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싱글 인 서울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를 정서적 무대로 활용한 감성 영화다. 홍대, 북촌, 한강공원, 종로 서점 골목 등 각 촬영지는 인물의 심리 변화와 감정 흐름에 따라 의미 있게 사용되며, 관객에게는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를 본 후 이 장소들을 직접 걸어본다면, 장면 속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더 깊이 있는 도시의 감성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