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개봉한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My Missing Valentine)*은 독특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펼쳐지는 로맨스 영화다. 사랑의 타이밍이 어긋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작품상 포함 5관왕을 차지하며 대만 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 영화는 로맨스 판타지를 넘어, 시간과 공간, 감정이 어우러진 독특한 영화 언어를 제시한다. 특히 대만의 일상적인 풍경들이 환상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담겨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번 글에서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주요 배경지와 촬영 장소를 중심으로, 그 공간들이 주는 상징성과 감정적 의미를 분석해본다.
타이중 우체국 – 반복되는 일상의 무대이자 연결의 출발점
영화의 주인공 ‘샤오치’는 타이중의 한 평범한 우체국에서 일한다. 그녀가 창구에서 일하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이 타이중 제1우체국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실제로 이 우체국은 대만 타이중시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물로,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고전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 장소는 단순한 업무공간을 넘어, 샤오치의 내면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녀는 고객을 응대하면서도 늘 시계를 보고, 타이밍을 신경 쓰는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늘 빨리 지나간다. 이 우체국은 그런 그녀의 ‘정확함’과 ‘일정함’을 보여주는 무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샤오치는 늘 어딘가 ‘빨리 지나가 버린 시간’에 뒤처진다. 그녀의 삶에서 발렌타인데이가 사라진 것도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카메라는 이 장소를 때로는 정적이게,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담는다. 샤오치의 시점으로 바라본 창밖의 풍경, 고요한 정적,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관객은 마치 ‘정지된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현실의 장소이면서도 판타지의 시작점이 되는 이 공간은 영화의 세계관 전체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관객 입장에서 이 공간은 너무도 평범해서 특별하다. 마치 우리의 출근길, 사무실처럼 익숙하지만, 동시에 하루하루가 미묘하게 다른 감정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드는 곳이다.
버스 정류장과 달리는 버스 – 시간과 감정의 교차로
마이 미씽 발렌타인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는 버스 정류장과 버스 내부다. 남자 주인공 ‘아타이’는 버스 운전사로, 하루 종일 같은 노선을 돌며 승객들을 태운다. 그의 삶은 반복적이지만, 그는 버스 안에서 샤오치를 몰래 바라보며 마음을 키워간다.
버스라는 공간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이는 곧 인물의 ‘시간 흐름’을 상징한다. 버스는 출발하고, 멈추고, 다시 달린다. 사람들은 타고, 내리고, 스쳐간다. 샤오치는 늘 바쁘게 움직이지만, 아타이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두 사람의 시간은 항상 엇갈려 있다. 대만 도심의 버스 풍경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흔들리는 창문, 햇살이 비추는 통로, 늘 같은 자리에 앉은 샤오치. 그 모든 요소가 반복되며 쌓여, 관객에게는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느껴진다.
특히 아타이가 샤오치의 시간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클라이맥스이자,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결합되는 지점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CG효과를 넘어, 일상 공간 속에 판타지를 녹여내는 연출의 정점을 보여준다.
관객은 버스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게 되며, 반복된 공간이 감정의 누적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체조장과 운동장 –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을 잇는 공간
샤오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체조장과 운동장은 대만 중남부 지역의 실제 초등학교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간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심리적 기능을 수행한다. 샤오치가 유일하게 ‘느린 시간’을 경험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아타이가 그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는 반전은 이 운동장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운동장이라는 공간은 대개 어린 시절의 자유, 순수, 그리고 때때로 외로움을 상징한다. 샤오치는 이 공간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였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 운동장의 공기는 말이 없지만, 샤오치의 내면에 가라앉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공 던지기, 달리기, 장난치는 아이들의 배경 속에 홀로 서 있던 샤오치의 모습은, 영화 전체의 톤을 결정짓는 핵심 이미지 중 하나다.
실제 촬영지 역시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짙은 시골 학교의 운동장으로, 대만 특유의 정취와 향수를 자극한다. 한적한 나무, 페인트 벗겨진 철봉, 낮은 콘크리트 건물 등은 관객에게도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사진관과 인쇄소 – 기억을 남기려는 인간의 흔적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진관과 인쇄소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서 기억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다. 샤오치의 사라진 발렌타인데이를 찾기 위한 열쇠 중 하나는 바로 ‘사진’이다. 사진은 시간을 ‘고정’시키는 도구다. 아타이는 그녀의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몰래 사진을 찍고, 그 인화를 반복한다. 그가 다니는 인쇄소는 그런 기억을 실체화하는 공간이며, 잊히지 않기 위한 노력의 상징이다.
사진관 내부는 조명도 어둡고 소품도 낡았지만, 그 모든 것이 감정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사진을 현상하는 장면, 인쇄기에서 종이가 나오는 장면 등은 시각적 쾌감은 물론,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관객은 이 공간을 통해 인간이 왜 사랑을 기록하려 하는지, 기억을 붙잡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이 주는 깊은 감동은, 단지 로맨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놓쳐버린 시간’에 대한 공통된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대만의 일상적인 공간들을 감정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영화다. 우체국, 버스, 운동장, 사진관 등 평범한 장소들이 인물의 심리와 얽히면서 특별한 감정의 배경이 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공간을 통해 시간과 감정을 직조하는 섬세한 시도다. 영화를 본 후 실제 대만을 찾는다면, 그곳에서 흘렀던 감정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느릿하지만 분명한, 기억을 위한 여정을 떠나고 싶다면 이 영화와 그 장소들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