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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완벽 분석 (인물, 상징, 구조)

by togkyi 2025. 5. 22.

영화 걸어도 걸어도 포토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범한 하루를 그리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감정선과 구조적인 상징들이 교차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을 인물, 상징, 서사 구조의 세 가지 측면에서 철저히 분석하여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본질적인 메시지를 파헤쳐본다.

인물 분석: 가족 내면의 감정들

‘걸어도 걸어도’는 겉보기에 단조로운 하루 동안 벌어지는 가족의 재회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각 인물의 상처, 기대, 회한이 촘촘히 숨어 있다. 주요 인물인 아버지(요시오)는 은퇴한 의사로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은 아들 료타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어머니(도시코)는 겉으로는 평온한 미소를 유지하지만, 큰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상실감과 둘째 아들에 대한 거리감을 동시에 품고 있다. 료타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죄책감과 큰형에 대한 열등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지 못하고, 재혼한 아내와 함께 가족을 만나러 오지만 여전히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처럼 느낀다. 료타의 아내 유키는 시부모 앞에서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남편과 시댁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감지한다.
이러한 인물 간의 감정선은 대사보다는 침묵, 눈빛, 사소한 행동들을 통해 전달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다정하게 요리를 챙기면서도 “전 와인이 안 맞더라고요”라는 말처럼, 겉과 속이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방식은 일본식 감정 표현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물 간의 거리와 분위기를 통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화면을 통해 직조된다. 각 인물은 자신의 결핍과 후회를 안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에, 관객은 더욱 깊은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상징 분석: 일상 속 숨겨진 의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상적 사물을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데 능숙하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음식, 계절, 집 구조, 심지어 고요함까지도 모두 상징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영화 내내 등장하는 옥수수와 튀김은 어머니 도시코가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억눌린 감정과 의무감을 의미한다.
여름이라는 계절 또한 중요한 상징이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가족이 모여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코 따뜻하지 않다. 땀을 흘리며 불편함을 참는 모습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불편함과 닮아 있다. 또한 죽은 큰아들의 기일에만 모이는 가족이라는 설정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자발적인 사랑보다는 의례와 의무로 굳어진 현실을 비춘다.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는 ‘집’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부모의 오래된 집에서 벌어지는데, 이 공간은 과거에 머무는 인물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낡은 벽지와 좁은 복도, 닫히지 않는 문틈 등은 가족 구성원들이 지닌 틈과 균열을 은유한다. 이처럼 고레에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틈을 눈에 보이는 사물과 공간으로 상징화하며, 관객의 감각을 통해 서사를 전달한다.

구조 분석: 느림과 여운의 미학

‘걸어도 걸어도’는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이야기에는 명확한 갈등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 대신 느린 호흡으로 전개되며,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평범한 하루를 따라간다. 이는 고레에다 감독이 의도한 방식으로, 인생이란 결국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연속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영화는 아침에 료타 가족이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저녁 식사와 밤의 대화를 지나 다음날 아침에 이별하며 끝난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그 안에는 세대 간의 갈등, 사랑의 방식, 상실의 흔적 등 인생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시계처럼 흐르지만, 장면마다 남겨지는 여운은 훨씬 오래 지속된다. 또한 대사의 배치와 침묵의 활용은 구조적으로 영화의 리듬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과거를 회상하며 작은 이야기를 꺼낼 때의 정적, 그리고 료타가 대답을 피하는 순간들이 구조상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도를 조절하며 관객에게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한다.
감독은 이 영화의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가족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안고 살아가는가? 이처럼 구조적인 면에서도 '걸어도 걸어도'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철학과 성찰을 내포한다.

 

‘걸어도 걸어도’는 극적인 사건 없이도 삶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다.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 일상적 사물에 담긴 상징, 그리고 여백이 많은 구조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가족과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주며,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한 번 감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