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중경삼림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90년대 홍콩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입니다. 감각적인 영상미와 독특한 연출 스타일, 그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어우러져 많은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 특히 이 영화는 홍콩의 실제 거리와 명소들을 배경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성지순례 코스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중경삼림의 주요 촬영지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영화 속 그 감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왕가위 감독이 어떻게 홍콩의 도시 풍경을 활용했는지, 그리고 그곳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알아보죠.
1.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 사랑과 이별이 교차하는 공간
홍콩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Mid-Levels Escalator)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 중 하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으로, 영화 속에서는 경찰 663(양조위)와 페이(왕페이)의 일상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등장하죠.
이 장면에서 페이는 경찰 663의 아파트를 몰래 드나들며 그의 생활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그녀는 그가 없는 동안 집을 청소하고, 가구를 바꾸고, 심지어 금붕어까지 바꿔 놓습니다. 그러나 경찰 663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점점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둘 사이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페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은 사랑이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과정을 은유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이곳을 방문하면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르며, 바쁜 홍콩의 도시 분위기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화 팬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걸으며 중경삼림의 감성을 직접 느껴볼 수 있습니다.
2. 충킹맨션 – 다문화적인 홍콩의 얼굴
영화 제목인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은 홍콩의 유명한 건물인 충킹맨션(Chungking Mansions)과 ‘캘리포니아 레스토랑(Express Deli)’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충킹맨션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독특한 장소로, 저렴한 숙소와 각종 상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경찰 223(금성무)은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후, 충킹맨션에서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파인애플의 유통기한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사랑도 만료될 것이라고 믿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통조림을 쌓아 둡니다. 이 장면은 사랑의 유한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현재 충킹맨션은 여전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홍콩의 다문화적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방문객들은 인도, 아프리카, 중동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저렴한 맛집도 많아 홍콩 여행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입니다.
3. 골든필드 –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중경삼림의 또 다른 주요 촬영지는 골든필드(Golden Field, 金巴利道一帶)입니다. 이곳은 90년대 홍콩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으며, 경찰 223과 금발의 여성(브리짓 린)이 처음 만나는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 경찰 223은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실의에 빠져 홍콩의 밤거리를 배회합니다. 그때 금발의 여성이 그를 발견하고 접근하죠. 두 사람은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묘한 위안을 줍니다.
이 장면에서 왕가위 감독은 네온사인이 빛나는 홍콩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사용하여, 도시의 외로움과 우연한 만남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빠른 프레임 전환과 몽환적인 카메라 기법은 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현재 골든필드와 그 주변 지역은 현대화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90년대 홍콩 영화의 감성을 찾으려는 팬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영화 속 홍콩을 직접 느껴보자
중경삼림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홍콩이라는 도시의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영화 속 배경이 된 장소들은 단순한 촬영지가 아니라, 캐릭터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의 바쁜 흐름 속에서 교차하는 시선, 충킹맨션에서의 짧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골든필드에서 펼쳐지는 네온사인 속의 감성적인 순간들—이 모든 장소들은 중경삼림의 매력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홍콩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영화 속 촬영지를 직접 방문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왕가위 감독이 담아낸 그 감성과 분위기를 실제로 걸으며 느껴보세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